아주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할 때 제일 신나는지. 어디에 가야 그걸 할 수 있을지. 그랬더니 디자인, 그중에서도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 액션 스포츠 분야의 제품 디자인을 해보자는 답이 나왔습니다. 군 제대 후 디자인 전공을 시작하려니 국내 미술 대학은 수능이나 입시를 다시 치러야 하니 장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그래서 유학으로 눈을 돌렸고 미국으로 후보지가 좁혀졌고, 제품 디자인 쪽으로 유명한 학교 몇 개를 목표로 유학 전문 미술 학원을 다니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비전공자라 탄탄한 그림 실력도, 화려한 스케치도 없었지만 다행히 학교에서 창의성 면에서 잠재력을 발견해준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스포츠 디자인 외에 다른 건 아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하고 싶은 회사 역시 나이키와 한 스노보드웨어 브랜드 딱 두 곳이었을 만큼 원하는 바가 명확했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할때마다 어떻게든 스포츠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고, 이런 성향 때문에 종종 교수님과 의견 충돌이 있기도 했습니다. 학생 때는 더 다양한 디자인 경험을 쌓고 다각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좁아져야 깊어진다고 생각했고, 목표로 둔 회사나 산업군이 원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계속 줄이고 줄이고, 좁히고 좁히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산업 디자이너, 특히 제품 디자이너가 자기 세계에 빠져버리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는 예술가가 아닙니다. 소비자의 마음, 이윤, 제품의 목적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나 머릿속의 생각을 다른 이들과 많이 공유하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학생 때나 지금이나 뭔가 작업할 때면 초기 단계에서부터 주변에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이야기를 듣는 편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반응에서도 얻을 게 있습니다.